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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의 교차성/인식론 본문

이론, 방법론, 인식론

오드리 로드의 교차성/인식론

플루키 2019. 3. 27. 16:41

불평등과 사회정의를 향한 기획은 대개 차별과 억압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 경험은 또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의 경험이 되며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반이 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차별과 억압의 경험에 대한 강조는 사회적 지배 양상과 재현을 재생산하는 것일 수 있다. 특히 피해자성과 소수자성에 대한 강조는 억압받은 집단의 집단적 정체성 형성에 쉽게 동원된다. 그러나 오드레 로드는 “내가 상처를 입은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전사이기도 하다”며 차별과 억압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48). 특히 소수자의 경험을 타자화 하는 언설들에 저항하면서 로드는 우리를 침묵시키는 목소리의 숨은 주체가 무엇이며, 그들이 기대고 있는 특권이 무엇인지 질문한다(52).

 

이는 페미니스트 기획이 단지 억압받는 소수자의 인정투쟁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임을 분명히 한다. 예를 들어 로드는 흑인 여성들이 “흑인 남성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들이 흑인 남성들을 “앞지르게” 될 것이라는 불안이 전제하는 공고한 젠더 위계를 발견한다(81-82). 이는 단지 현재 누가 피해를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넘어서 정의에 관한 인식론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사회 혹은 질서가 지금 누구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냐는 것이다.

 

이때 로드가 강조하는 것은 단지 젠더의 차원만은 아니다. 로드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동성애 혐오 등이 “차이를 인간의 역동적 힘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54-55). 이때 하나의 억압 기제가 다른 억압에 대한 해방을 저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배제된 자들 내부의 차이들을 강조하는 것이 우파 냉소주의의 전형적인 전략임을 일깨우면서 로드는 “우리가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인해 분열하는 한 우리는 효과적인 정치적 행동을 함께 할 수 없게 된다”고 통렬하게 지적한다(235).

 

로드의 지적은 교차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핵심이 ‘차이’를 ‘분열’ 혹은 분리주의로 연결시키는 흐름이 결국 누구에게 정치적으로 유용하게 되는가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로드는 1960년대가 비록 급진적인 힘을 표출했던 시기였으나, 동시에 분열과 혼란으로 가득했다고 기억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은 도리어 “누가 더 흑인다운가, 누가 더 가난한가 같은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게임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241). 그러나 이는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로드는 “우리가 이 차이 때문에 분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런 차이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분열한다”고 주장한다(195).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사회정의 기획의 출발로 삼는 로드의 관점은 차별과 억압의 개별적인 경험을 어떻게 운동으로 조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다. 로드도 인정하는 것처럼 분명 이는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즉, “공통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려면 다양성 내부의 긴장을 끈질기게 살피며 유지해야 한다.”(240) 이는 또한 집단 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한다. 로드는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려면, 억압이 개개인의 마음에 심어 둔 절망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차별과 억압의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집단적 차원을 끊임없이 오가며 사유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드리 로드. 2018[1984]. 박미선, 주해연 옮김.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