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사회학

포스트식민주의 퀴어? 남성성, 통치성, 퀴어 정치학 본문

포스트식민주의, 퀴어 지정학

포스트식민주의 퀴어? 남성성, 통치성, 퀴어 정치학

플루키 2019. 3. 27. 16:57

대개 전지구적 관점에서 실시되는 남성성 연구는 하층의 주변화된 남성들에게 주목해왔다. 그러나 호앙(Hoang, 2014)은 이러한 접근이 중심과 주변이라는 제국주의적 질서를 재생산할 수 있다면서, 포스트식민적 맥락과 신자유주의의 맥락에서 경쟁적인 남성성의 위계질서를 복잡하게 사유할 것을 요청한다(510). 호앙은 나아가 식민지 남성성을 가부장제와의 관계 속에서만 다루는 기존 연구는 서구와 비서구는 물론 인종, 계급, 젠더 등 새로운 위계질서 속에서 구축되는 남성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513).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그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글로벌 성매매 산업에서 외국인/베트남인 상류층 남성 사이의 성매매가 어떻게 구조화되어있는지 분석함으로서 상이한 남성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약 22개월 간의 에쓰노그래피 현지 조사를 실시하면서 성구매자들과 여성 성노동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내부자들의 관계를 잘 파악하기 위해 호스티스와 바텐더로 직접 일하기도 했다(514).

 

특히 호앙은 남성성과 관련된 많은 에쓰노그래피가 흑인 남성성, 라틴 남성성, 게이 남성성과 같이 남성성을 본질주의적인 범주로 설명하려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고 비판한다(515). 이를 피하기 위해 호앙은 서구 저가 여행객, 서구 사업가, 국외 엘리트 베트남인(Viet Kieu), 현지 엘리트 베트남 남성이라는 네 가지 유형에 따라 서로가 욕망하는 남성성을 획득하기 위해 성매매 산업에서 여성의 몸과 노동에 어떻게 의존하는지 분석함으로써, (각 남성성의 속성이 아니라) 남성성이 구축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515).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서구 저가 여행객과 서구 사업가들은 (계급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서구의 우월성을 인종주의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베트남 여성 성노동자의 몸을 활용한다(516). 그러나 국외 엘리트 베트남 남성과 현재 엘리트 베트남 남성은 경제적 우월함을 바탕으로 서구 남성들보다 우월한 남성성을 과시하고자하며, 여기에서도 매개되는 것은 베트남 여성 성노동자의 몸이다(521, 523). 그런데 호앙이 보기에 서구 남성들은 인종, 계급, 민족 기반의 교차하는 관계들을 가로질러 그들의 남성성을 확증하기 위해 글로벌 자본질서의 주변부에 위치한 여성 성노동자(의 몸)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526).

 

이러한 연구는 포스트식민주의와 글로벌 남성성 논의에 있어서 지구적 자본주의와 남성들의 지위가 어떻게 관계 맺는지, 또 동일한 지리적 장소에서 다양하고 경쟁하는 남성성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호앙의 섬세한 에쓰노그래피 분석은 민족, 인종, 젠더 등에 따라 매끈하게 나뉠 것처럼 말해지는 다양한 위계질서가 사실상 어떻게 경합하고 있으며, 특히 글로벌 자본주의의 주변적인 장소에서 어떻게 지배적 남성성이 전복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시선 아래 비서구의 ‘독특한’ 행위를 ‘이국적인’ 것으로 묘사했던 과거 에쓰노그래피와 달리, 포스트식민주의적인 관점에서 경합하는 관계 양상을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라킴세티(Lakkimsetti, 2014)는 푸코의 생명 권력과 통치성 개념에 대한 페미니스트와 포스트식민주의 비판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예컨대 젠더화된 주체성들과 비서구, 포스트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인도의 통치성은 “이질적인 사회 영역, 다층적인 인구 집단, 상이한 전략들로 작동한다”는 것이다(205). 포스트식민 사회인 인도에서 대부분 주민들은 아주 가끔씩만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여겨지며, 대부분은 국가의 훈육 프로젝트에서 주변화되어 있다는 것이다(205-206). 그러나 동시에 주체는 완전히 통치 바깥(ungoverned)에 놓여있지도 않은데, 라킴세티는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의 성 노동자들이 HIV와 관련된 담론을 경유하여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222).

 

이를 위해 라킴세티는 뉴델리에서 HIV와 관련된 법적 토론에 참석하는 한편 성 노동자들과 만나고, 지역 성 노동자 온라인 사이트를 분석하는 등 참여관찰을 실시하였고, 성 노동자 및 이와 관련된 사람들과 심층 면접을 진행하면서 에쓰노그래피 연구를 실시하였다(207). 또, 공공 문서, 국회 보고서, 신문 기사, 청문회 자료집 등을 분석해서 성 관계에 관한 과학적 합리성과 주체의 경험에 기반한 주장이 어떻게 경합하는지, 질병 예방에 동원되는 기술과 전략은 무엇인지, 건강 프로젝트나 국가 정책이 다양한 행위자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어떻게 수정되는지를 살핀다(208).

 

라킴세티의 주요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국가와 성 노동자의 관계를 규제적인 것으로만 파악하다보면 협상의 과정이 누락된다는 데에 있다. 근대 국가에 있어서 생명권력의 필요는 포함과 배제의 지속적인 프로젝트를 생산하는데, 성매매에 대한 규제와 HIV/AIDS라는 전염병을 관리해야 하는 이중적인 딜레마 속에서 성 노동자들은 HIV/AIDS 담론을 자원삼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222). 또한 여기에서 지역적 동원뿐만 아니라 성적 건강과 관련된 초국적 압력은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223). 이러한 역동은 법‧정책의 변화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며, 특히 낙인화된 집단이 어떻게 자신들의 주체성과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에쓰노그래피가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쿠리어(Currier, 2012)는 포스트식민주의라는 맥락에서 식민지의 잔재, 제국주의의 유산이라는 명목 하에 젠더와 성적 차이가 배제의 대상으로 환원되는 맥락에 관심을 가진다. 남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는 서구로부터 독립한 이후 1990년대에 이르면 포스트식민 세력이 집권하게 된다. 이때 젠더, 섹슈얼리티, 동성애 등은 서구의 식민주의의 산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나미비아에서 성적 권리에 대한 사회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442-443). 이는 젠더화되고 성애화(sexualized)된 민족주의 내지는 식민주의라는 논의를 배경으로 하여 민족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있어서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자원으로 동원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445). 이를 위해 쿠리어는 4개월간의 에쓰노그래피 현장 조사와 함께 28명의 나미비아 LGBT 활동가에 대한 심층 면접 및 뉴스기사 분석을 실시했다(442).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스트 논의에서는 민족주의가 전통을 여성의 것으로 남기는 한편, 포스트식민 사회의 미래상을 남성의 역할로 주장하는 방식으로 젠더화되어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444). 이 과정에서 사실상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전통은 ‘발명’되어야만 했는데(445), 쿠리어는 여기에 덧붙여 (남성중심적) 포스트식민 정치세력이 정치적인 동성애혐오(political homophobia)를 활용한다는 점을 강조한다(447). 다시 말해 민족주의 정치지도자들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을 외래의 것, 아프리카적이지 않은 것, 비국민적인 것, 유럽 제국주의의 것으로 환원시키고자 한다. 이에 맞서 LGBT 활동가들은 자신들 또한 민족의 일원이며,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에 참여해왔고, (심지어는) 자신들도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해야(만) 했다(450-451). 쿠리어의 주장은 서구중심적인 LGBT 사회운동 논의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구에서는 성적 시민권이라는 논의를 중심으로 동성 결혼이나 군 입대 등 주요한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 LGBT 사회운동 및 그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비서구적 맥락에서는 오히려 국민/비국민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전선이 LGBT 사회운동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등, 국가 별로 섹슈얼리티의 지형은 대단히 상이할 수 있다.

 

이처럼 포스트식민주의 연구에서 에쓰노그래피는 식민주의/민족주의, 글로벌 자본의 중심/주변이라는 맥락에서 민족, 인종, 계급, 젠더의 교차 속에서 주변화된 존재(집단)에 주목하면서 지배 담론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특히 마지막으로 살펴본 쿠리어의 에쓰노그래피는 한편으로 포스트식민주의 사회에서 민족주의적 담론에 휩쓸려가는 주변화된 존재에 주목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규범적 성적 주체의 퀴어 정치학(queer politics)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성 과학에 기반한 과학적 인종주의는 제국주의 담론과 공명했고, 소위 ‘성적 일탈자들(inverts)’은 지배적인 시선 아래 낙인화되었다. 에쓰노그래피는 이러한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비규범적 성적 주체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사회에 존재하는 비규범적인 성적 주체에 관한 일부 에쓰노그래피는 지배적인 성적 규범에 도전하는 주요한 자원이 되기도 했다(루빈, 593).

 

 

참고문헌

 

Hoang, K. K. (2014). Flirting with Capital: Negotiating Perceptions of Pan-Asian Ascendency and Western Decline in Global Sex Work. Social Problems61(4), 507-529.

Lakkimsetti, C. (2014). “HIV Is Our Friend”: Prostitution, Biopower, and the State in Postcolonial India. Signs: Journal of Women in Culture and Society, 40(1), 201-226.

Currier, A. (2012). The aftermath of decolonization: Gender and sexual dissidence in postindependence Namibia. Signs: Journal of Women in Culture and Society, 37(2), 441-467.

게일 루빈. 2015. 신혜수 외 옮김. 『일탈』. 현실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