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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주의, 퀴어 지정학

'남반구'에서 젠더를 사유하기

플루키 2019. 6. 26. 06:02

  오늘 소개할 글은 <남성성/들>의 저자로 유명한 래윈 코넬Raewyn Connell의 논문입니다. 2014년에 Feminist Studies 저널에 게재한 "Rethinking Gender from the South"라는 글입니다. 

 


 

  이 글은 페미니즘 지식 생산의 지정학적 권력 불평등을 탐구하는 지식사회학 논문입니다. 코넬은 199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 논의 속에서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중요성이 커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지식 생산의 차원에서 유럽-아메리카와 남반구 간의 위계가 여전히 강고함을 비판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젠더와 같은 페미니스트 개념 및 이론화의 지정학적 토대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지식 생산과 정치경제의 불평등 구조는 무엇인지 분석하고, 나아가 주변부의 이론이 갖는 급진적 가능성은 무엇인지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입니다.

 

  즉, 이 글은 페미니스트 논의(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과)학적 이론 자체)의 서구-백인 중심성에 대한 비판의 흐름 속에 위치합니다. 주변부의 경험과 현실이 “자료”로만 수집되며, 서구적 관점, 즉 “이론”을 통해 해석되고 배치된다는 문제의식인 셈입니다. 이는 제국주의의 질서 속에서 지식이 복무해왔던 방식이며, 코넬은 신제국주의적 영향 속에서 지식 생산의 경제가 구조적으로 재생산 되면서 지구적 불평등의 지속에 복무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에서 생산된 일부 지식은 스스로 기존 지식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보편적 지식을 상대화하는 “모자이크 인식론”을 제안해온 바 있습니다(522). 이는 지식 생산을 맥락화 한다는 의의가 있으나, 코넬은 이 또한 제국의 식민주의적 접근과 유사한 방식으로 지역적 경험과 지식을 배치할 수 있고, 근본적인 지식 생산의 경제라는 구조는 변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또,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제기가 일부 영역을 탈중심화 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525), 세계화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영향을 고려하면 지식 생산의 경제가 어떻게 구조화되고 변화할 수 있는지 초국적 맥락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코넬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식 생산에 있어서 지구적 노동 분업이 존재하며, 이는 제국주의의 유산인 동시에 불평등을 지속하는 데 여전히 복무한다. 특히 젠더 연구에서도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 거치는 제도는 (비록 직접적 통제는 아니지만) 위계를 재생산하는 지식 경제 구조로 이해됩니다. 이 구조는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는데(525), 비서구 출신 연구자는 이 제도에 편입되기를 강요받고(코넬은 이를 외향성extraversion으로 정의합니다. 한국도 이러한 경향이 심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524), 지식의 장 속에서 비서구 지식은 그저 “사례case”로 취급되면서, 중심과 주변부의 관계는 구조적으로 재생산됩니다.

 

  둘째, 주변부 지식은 이미 “이론”이라고 할 만한 것을 충분히 생산해 왔으며(특히 식민화 된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결부된다), 이를 중요한 텍스트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들은 젠더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지정학적,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 따라서 젠더 개념 자체를 탈식민화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이를 위해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자체가 어떻게 젠더화 된 과정에 다름 아니었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지구적 권력의 배치가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구체적으로는 국가, NGO, 대학, 사회운동 등이 어떻게 페미니스트 이론과 정치에 새로운/다른 조건과 변화로 나타나는지 살피고, 나아가 지식 생산을 위한 경제를 탈중심화하고 재구축하려는 남반구 연대가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538).

 

  정리하자면 이 글은 페미니스트 지식 생산의 경제가 구조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시도하는 일종의 리뷰 논문입니다. 특히 비/서구 페미니스트 지식을 다루는 선집과 주요 논문의 참고문헌이 상호참조하며 비대칭적으로 서구적 지식을 생산해왔으며, 여기 포함되지 못했던 비서구 지식이 이미 서구적 지식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비판하고 확장해 왔음을 잘 보여줍니다.

 


 

  글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코넬은 (페미니스트) 지식 생산의 지정학적 권력 배치를 북반구/남반구의 구도로 이해합니다. 이는 실제로 국제 질서와 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의 대부분이 글로벌 북반구에 위치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코넬은 2007년에 <남반구 이론southern theory>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그러나 남반구(이론)는 단순히 적도를 기준으로 한 글로벌 남반구와 북반구의 위계 내지 격차를 일컫는 말은 아닙니다.

 

  페미니스트 지식 생산의 지정학적 위계를 비판하는 또 다른 이론/인식론으로는 (이 게시판의 제목이기도 한)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가 있습니다. 탈식민주의는 보다 구체적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와 유산을 문제시 하는 관점입니다. 남반구 이론은 일정 부분 탈식민주의의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코넬은 호주에서 태어나고 활동하는 학자입니다. 호주는 식민 통치를 받은 적이 없으며(물론 원주민 학살이라는 잔혹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서구 국가와 함께 분류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탈식민주의의 틀을 통해 호주를 바라보면 앞선 글의 문제제기가 어려워집니다.

 

  코넬이 보기에 호주 또한 글로벌 지식 경제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고, 따라서 글로벌 지식 경제의 지정학적 위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반구라는 명칭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 경로(제국주의)로 인해 지구적 위계가 형성되었고,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남반구라는 문제제기는 지구적 패권과 지식 생산에 있어서 중심부metropole와 주변부periphery를 구분합니다(이는 남반구 이론이 서구 중심의 근대화론에 반발하여 남미를 중심으로 발전한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에 빚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탈식민주의와 남반구 이론의 차이는 지정학적 권력의 배치와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즉,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무엇이라면 그것의 양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역할, 글로벌 위계에 따른 지정학적 권력의 배치와 변화 등을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