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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이론적 지도 그리기: 민족주의부터 포스트식민 페미니즘까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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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의 이론적 지도 그리기: 민족주의부터 포스트식민 페미니즘까지

플루키 2019. 3. 27. 17:48

1. 들어가며

 

민족주의(nationalism)란 무엇인가? 아니, 도대체 민족(nation)이란 무엇인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한편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면서 전 세계가 극우주의의 물결에 휩쓸리는 오늘날, 민족주의에 관한 이해가 다시금 요청되고 있다. 이른바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라는 서사에서도 드러나듯 한국 또한 민족주의적 방식의 역사 서술을 통해 단일 민족‧단일 역사로서 국가와 민족을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방식의 민족주의 이해 방식을 두고 원초론(Primordialism)이라 하는데, 우뭇 오즈키림리(Özkirimli, 2010)는 민족주의를 원초론, 근대론(Modernism), 종족상징주의(Ethno-symbolism), 그리고 포스트구조주의와 페미니즘 등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경향들’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오즈키림리의 지도를 민족주의에 대한 고전적 접근을 살펴본 뒤, 이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의 비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민족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에 관한 논의가 페미니스트 정치학과 만나서 갖는 오늘날의 함의에 대해서도 다루고자 한다.

 

2. 민족주의에 관한 고전적 이론

 

1) 원초론(Primordialism)

 

오즈키림리의 정의에 따르면 원초론이란 “민족성(nationality)은 인간의 본질적인(natural) 부분이며 민족은 태초부터 존재했다”는 접근방식을 말한다(Özkirimli, 2010: 51). 에른스트 겔너가 표현하듯 “사람은 코와 두 귀를 가진 것처럼 민족성(nationality)을 가져야만 한다.”(Gellner, 1983: 6; Özkirimli, 2010: 51에서 재인용). 민족의 영속성(antiquity)과 본질(naturalness)을 ‘믿는 것’이 핵심인데, 오즈키림리는 이러한 원초론을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연주의적 접근(naturalist approach)이다. 자연주의적 접근은 대부분 민족주의자가 민족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국가 권력의 재생산을 위한 정치적 수사로 활용되곤 하지만, 역사 서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사용된다(Özkirimli, 2010: 51). 자연주의적 접근에서 반복되는 서사로는 (1) 민족의 영속성, (2) 민족의 황금기, (3) 민족 문화의 우월함, (4) 휴지기(이른바 ‘미몽의 시기’), 그리고 (5) 민족 영웅과 같은 주제들이 있다(Özkirimli, 2010: 51-52).

 

두 번째는 사회생물학적 접근이다. 사회생물학적 접근에서는 친족의 구성이 인간 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족이나 인종을 친족 개념의 확장으로 이해한다(Özkirimli, 2010: 54). 반 덴 베르게(Van den Berghe, 1978)는 혈연 선택이 모두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의 사회성을 ‘호혜성(reciprocity)’과 ‘강압(coercion)’으로 부연하면서(Özkirimli, 2010: 54-55에서 재인용), 민족적 집단이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현상에 선행하는 것이 바로 인간 재생산의 생물학적 구조라고 설명한다(Özkirimli, 2010: 55).

 

세 번째는 문화적 접근이다. 문화적 접근은 앞선 두 가지 접근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앞선 두 가지 접근방식이 민족을 원초적인 실체로 이해한다면, 클리포드 기어츠(Geerts, 2004) 등은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민족을 원초적이라고 ‘믿는 것’에 보다 주목한다(Özkirimli, 2010: 57). 즉, 문화적 접근에서 원초적 정체성이나 유대(attachment)는 실제로 주어진 것(actual ‘givens’)이 아니라 주어졌다고 여기는 것(perceived ‘given’)을 가리킨다(Özkirimli, 2010: 57). 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원초적 유대를 순전히 감정(emotion)의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것은 아닌데,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민족이 단지 원초적인 실제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거기에 감정이나 믿음이라는 요소가 결부된다는 것이다(Özkirimli, 2010: 57).

 

네 번째는 항존주의(perennialism)이다. 앤서니 스미스(Smith, 1998: 159)의 설명에 따르면, 항존주의자들은 민족의 역사적 영속성을 믿으며, 인간의 삶에서 민족이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자연적인 것 자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Özkirimli, 2010: 58에서 재인용). 이는 근대 민족이 머나먼 과거의 역사로부터 지속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다른 측면에서 항존주의는 특정한 민족이 나타나거나 사라지더라도, 인간 집단의 범주로서 민족 그 자체는 초역사적이라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Özkirimli, 2010: 58). 이들은 이를테면 중세 시대의 많은 기록에서 오늘날 민족주의의 기원이라고 할만한 ‘민족적 정서(national sentiment)’를 발견하기도 한다(Özkirimli, 2010: 58).

 

2) 근대론(Modernism)

 

근대론은 원초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근대론은 이른바 민족 형성(nation-building)에 관한 이론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관점 하에서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산업화, 관료제 국가, 도시화, 세속화 등과 같은 근대적 이행 과정의 결과물이며,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지난 200여 년 동안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원초론과 달리 근대론에서 민족이나 민족주의는 역사적 산물로 이해된다(Özkirimli, 2010: 72). 그러나 민족과 민족주의의 역사성과 근대성이라는 일반적인 가정을 제외하면 근대론자들의 주장은 매우 상이하다. 오즈키림리는 근대론자의 주장을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 있어서 무엇을 핵심으로 보는가에 따라 경제적 이행, 정치적 이행, 사회문화적 이행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Özkirimli, 2010: 72).

 

첫 번째는 근대화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접근 방식이다. 여기에는 주로 네오마르스크주의자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가 민족주의를 설명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진단하면서, 민족주의에 관한 대안적인 이해를 제공하고자 했다(Özkirimli, 2010: 74). 예컨대 톰 네언은 민족주의를 한 사회 내부의 역동이 아니라 18세기 이후 (전지구적) 역사 발전의 일반적인 과정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Özkirimli, 2010: 74). 네언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균등하게 경험되는 대신 제국주의와 같은 형태로 나아가면서, 주변부 국가들은 제국을 따라잡으면서도 이들의 개입은 저지해야 하는 딜레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 때 주변부 국가의 중간 계급 지식인들은 대중을 역사로 초대하면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민족주의를 만들어내야 했다(Özkirimli, 2010: 76). 또, 이러한 반제국주의로서의 민족주의가 민족국가(nation-state)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나자, 민족주의를 향한 ‘세계 정치의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고 중심부 국가들도 잇따라 민족주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Özkirimli, 2010: 76). 마이클 헥터도 이와 비슷하게 ‘내부적 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라는 개념으로 민족주의의 등장을 설명한다. 제국의 식민지가 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착취 하에서 주변화된 집단이 저항하면서 민족주의를 내세우게 된다는 것이다(Özkirimli, 2010: 79).

 

두 번째는 근대화를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접근이다. 대표적인 논자인 존 브루얼리(Breuilly, 2001)는 민족주의 운동에 관한 비교 분석을 통해 정치적 형태에 관한 민족주의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단순히 근대화나 근대 국가가 민족주의를 탄생시켰다는 설명 대신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서 근대 국가와 근대화라는 관념이 민족주의의 맥락화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을 강조한다(Breuilly, 2001: 50). 특히 근대 국가의 통치라는 맥락에서 국가와 사회 혹은 국가와 국민 사이에 적합한 고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되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족주의는 바로 그 적합성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Brueilly, 2001: 51). 즉, 브루얼리는 민족주의가 정치적인 것임을 강조하면서, 근대적 현상이자 정치적 독트린으로서 민족주의의 함의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에릭 홉스봄(Hobsbawm, 1996)은 ‘민중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하나의 단일한 민족으로 여기게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홉스봄에게 있어서 민족이란 역사를 잊는 것, 심지어 역사를 오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며, 따라서 민족의 역사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된다(Hobsbawm, 1996: 255). 이러한 민족 개념이 정치적으로 소환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민족적 분리주의(separatism)와 제노포비아(xenophobia)라고 할 수 있다(Hobsbawm, 1996: 258). 홉스봄은 이러한 정치적 민족주의가 ‘사회적 방향상실(social disorientation)’, 이른바 사회의 실패 때문에 나타난다고 진단하면서 ‘우리’와 ‘그들’이라는 (아마도 허구적인) 대립구도에서 지켜지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근본적인 사유를 요청한다(Hobsbawm, 1996: 264).

 

세 번째 근대화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접근이다. 에른스트 겔너(Gellner, 1983)는 민족주의를 “정치적인 것과 민족적인 단위가 조화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원리”라고 정의하면서(Gellner, 1983: 1; Özkirimli, 2010: 100에서 재인용), 따라서 “시민-국가의 경계, 왕조, 봉건적 영토가 거의 일치하지 않았던” 전근대 사회의 특징을 고려하면 민족주의는 근대 세계의 사회학적 필요성에 의해 요청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Özkirimli, 2010: 100). 한편 산업화된 근대 사회는 다원화되어 있고 매우 유동적이며 심지어 불평등한데, 중앙 국가는 교육을 통해 국가와 문화(여기에서 문화는 소수 엘리트의 상위 문화가 전체 인구로 확산되는 것을 가리킨다)를 하나로 통합시킨다(Özkirimli, 2010: 100-101). 즉, 민족주의는 “산업사회 조직의 산물”인데, 이러한 의미에서 겔너는 “민족을 낳는 것은 민족주의이며, 그 반대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Gellner, 1983: 55; Özkirimli, 2010: 103에서 재인용). 겔너가 뒤르켐의 전통에서 민족주의의 태동을 설명했다면, 앤더슨은 출판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족주의의 탄생을 결부시킨다(앤더슨, 2004; 65). 그런데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되 공동체’가 단지 허위날조나 거짓은 아닌데(이러한 지점에서 앤더슨은 겔너를 비판한다), 베네틱트 앤더슨(앤더슨, 2004)은 민족을 ‘진정한 공동체’와 대비하는 대신 민족이 어떻게 상상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앤더슨, 2004: 26). 여기에서 민족은 한정된 경계와 주권을 가진 공동체로 상상된다(앤더슨, 2004: 26-27). 앤더슨이 민족주의의 문화적 근원을 추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약하면, 국어의 탄생과 출판, 센서스, 지도와 같은 상징물의 로고화, 그리고 핵심적으로 언어의 독립성을 발견하게 하는 ‘모의된 역사’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들 마련하였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민족주의가 발명되었다는 것이다(앤더슨, 2004: 73-75, 214, 223). 나아가 앤더슨 또한 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선택적으로 구성되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는 특히 민족의 초/시간성을 구축하기 위해 ‘망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앤더슨, 2004: 259-260).

 

3) 종족상징주의(Ethno-Symbolism)

 

민족주의의 상징적 차원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 앤서니 스미스(Smith, 2001)는 앞선 원초론과 근대론의 이항대립적인 논쟁지형을 비틀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20세기에 걸쳐 민족주의가 인종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이 전통적인 민족주의 논의를 모두 ‘회고적 민족주의’, 즉 원초론으로 환원시키면서 그 대안으로 자유주의적 근대론을 제시한다고 정리한다(Smith, 2001: 9-10). 이러한 비판에서 원초론과 항존주의는 구분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스미스가 보기에 근대론자들은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해체하겠다면서 또다시 ‘근대 민족’이라는 신화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Smith, 2001: 10). 스미스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표적인 근대론자인 브루얼리와 홉스봄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우선 스미스는 브루얼리가 민족주의를 근대 국가 권력의 정당성 내지는 재생산이라는 맥락에서 등장한 정치적인 운동으로 강조한 나머지 (그가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상징, 세레모니, 대중적인 여운(resonance)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만일 민족이 근대적이고 근대성의 산물이라면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상징과 의식이 대중적으로 공명하는가?”(Smith, 2001: 11) 홉스봄의 경우도 비슷한데, 그는 근대의 정치적 운동으로서 영토적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가 역사적 지속성의 부재 속에서 고안된 전통을 만들어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Smith, 2001:12). 다시 말해 홉스봄에게 민족주의, 민족-국가, 민족 상징과 역사는 문화적 인공물이며, 전근대적인 종족(ethnic) 정체성과 근대적 민족주의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 스미스는 근대 민족주의와 전근대 공동체 내지는 문화와의 ‘단절’을 전제하는 이러한 논의에서 근대적 민족주의의 문화적, 상징적 내용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질문한다(Smith, 2001: 13). 이러한 ‘고안된 전통’을 전근대 사회의 여러 문화적, 상징적 차원과 분리한 채 역사적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스미스는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있어서 근대론자들이 주목했던 ‘외부적인’ 사회정치적 요소와 공존하는 ‘내부적인’ 상징적 요소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스미스는 민족주의의 기원에 관한 신항존주의(neo-perennialism) 역사가들의 논의를 검토한다. 그린펠트나 헤스팅스 등의 연구를 검토하면서 스미스는 엔더슨이 이야기한 언어(그리고 출판물)을 기반으로 한 ‘상상된 공동체’가 16세기, 혹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발견한다(Smith, 2001: 13). 또한 겔너와 홉스봄 같은 근대론자들이 ‘민족주의는 민족에 선행한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이러한 논의는 민족이 배타적인 근대적 민족주의에 선행하며, 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헤스팅스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민족을 대중적인 현상으로만 파악하는 근대론자와 달리 항존주의자들은 민족을 엘리트적이거나 대중적인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Smith, 2001: 15). 신항존주의자들은 이제 민족주의의 기원을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지만, 여기에서 스미스는 개념을 엄밀하게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를테면 민족이라고 할만한 것은 고대에도 있었을지 몰라도, 이는 정치적이라기보다 종족-문화적인 용어, 즉 문화민족(kulturnation)에 가깝다 이러한 민족 정의는 공유된 혈통과 집합적 기억을 강조하는 에스니시티(ethnicity)에 부합하는데, 종족 공동체(에스니; ethnie)는 “최소한 엘리트 사이에서 단일한 혈통 신화와 공유된 역사적 기억과 문화 요소, 역사적 영토와의 연결성, 특정한 연대의 방법 등을 공유하는 인구에 이름 붙여진 단위”로 정의된다(Smith, 2001: 19). 이와 달리 근대적 민족은 “역사적 영토, 공유된 신화와 역사적 기억, 대중문화(mass·public), 민족경제, 모든 구성원을 위한 공통의 법적 권리와 의무 등을 공유하는 인구에 붙여진 이름”을 의미한다(Smith, 2001: 19).

 

이러한 구분을 통해 스미스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둘 사이의 지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에스니시티를 특징으로 하는 에스니가 일반적인 형태였던 전근대에 비해 민족성(nationhood)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적 민족이 시기상 일정 부분 구분되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할 것을 주장한다. 첫째, 근대는 에스니의 개화, 즉 민족적 부흥과 큰 민족국가 내 소수민족으로 증명된다. 둘째, 근대 시기에 민족이 탄생했다는 분명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중세에도 엘리트와 대중에게서 ‘민족적 감성(national sentiment)’이 발견된다. 셋째, 근대 이전에도 근대적 민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몇몇 민족이 존재했다(Smith, 2001: 20-21). 스미스는 에스니시티와 민족성(nationhood)의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관계와 지속성에 주목하면서, 민족에 관한 연구가 독특한 언어나 민족주의의 개념과 문화에 주목하면서 민족의 주체적 요소의 의미를 파악하고, 장기지속(la longue durée)이라는 관점에서 집합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다루는 분석 기법을 채택하며, 문화적 공동체의 역사적 형태의 연속체에서 근대적 민족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Smith, 2001: 23). 즉, 신화나 공유된 기억과 문화적 코드 등을 바탕으로 에스니를 넓게 정의할 때 비로소 민족의 형성에 있어서 문화적 기초를 형성하는 주요한 혹은 ‘핵심적인’ 에스니를 발견하게 되며, 이는 근대적 민족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화적 요소들을 민족주의자들에게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연속성 안에서 서구적 의미의 최초의 민족을 발견하는 셈이다. 이를 종족상징주의(ethno-symbolic)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언어, 의례, 공예(artifact), 상징(emblem), 음악, 의복이 포함되며, 더욱 핵심적인 요소들은 공유된 기억, 신화, 가치, 전통과 거기에서부터 추동되는 제도화된 관행들이다(Smith, 2001: 23). 결론적으로 스미스는 민족주의자(nationalist)의 레토릭을 약화시키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설명이 긍정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는 반면 장기지속이라는 관점에서 민족의 사회문화적 요소를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상실케 하고 있다고 환기하며 종족상징주의의 함의를 강조한다(Smith, 2001: 25-26).

 

3.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들

 

1) ‘문화적 전회’와 대안적 접근들

 

1980년대 이후 기존 민족주의 이론의 전제 자체에 대한 도전이 제기되기 시작했다(Özkirimli, 2010: 169). 오즈키림리는 이를 ‘진부한 민족주의(banal nationalism)’, 민족과 젠더의 관계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 민족주의의 서구중심성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 비판, 민족주의를 담론 형태로 보는 관점, 집단 없는 민족성(ethnicity)에 관한 논의들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사회과학의 ‘문화적 전회(cultural turn)’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는데, 여기에서 문화는 계급, 성별, 섹슈얼리티, 에스니시티, 장소(place) 등 다양한 권력의 축과 분리되지 않는다(Eley and Suny, 1996; Özkirimli, 2010: 169에서 재인용). 또, 이러한 비판은 민족주의에 대한 간학제적 접근과 비판적 담론 분석, 대화 분석, 수사학 이론, 정신분석학, 그리고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새로운 인식론적 관점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Özkirimli, 2010: 170). 여기에서는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스튜어트 홀의 논의와 ‘진부한 민족주의’ 개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본 뒤 민족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판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1) 스튜어트 홀과 문화적 정체성

 

스튜어트 홀은 문화적 정체성과 에스니시티의 관계에 관한 질문과 함께 당대의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개념적, 정치적 질문을 맥락화하고자 한다(Hall, 1996: 339). 홀은 정체성을 사고하는 전통적인 방식, 즉 안정된 주체(a stable subject)에 대한 비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진정한 자아(true self)라는 식으로 사유와 존재의 고정된 지점으로서 정체성을 사유하는 것은 일종의 희망이나 노스탤지어라고 비꼬면서(Hall, 1996: 339-340), 홀은 주체를 탈중심화하는 네 가지 (포스트)모더니즘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두루 검토한다. 여기에는 (1) 정체성의 조건(conditions)을 역사적이고 변증법적인 관점에서 사유할 것을 요청하면서 주체와 구조의 관계를 그려냈던 마르크스, (2) 의식적인 것 바깥의 영역에 존재하는 무의식을 발견하면서 자기반영적인(self-reflective) 전체로서 자아와 정체성 개념을 탈안정화한 지그문트 프로이트, (3) “우리는 항상 언어 속에 위치한다”고 주장하면서 발화의 주체를 언어의 구조 속에 위치시킨 페르니당 소쉬르, (4)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서구적 지식이이나 이성에 대한 믿음에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한 프리드리히 니체가 포함된다(Hall, 1996: 340-341). 여기에 집합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단지 계급에 머무르지 않고 인종, 젠더, 민족 등으로 확장되어 온 사회정치적 과정을 환기시키며 홀은 안정적인 정체성의 상대화에 직면하여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질문을 제기한다(Hall, 1996: 343).

 

그러나 홀은 자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극적인 버전으로서 커버스토리와 같은 부유하는 정체성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Hall, 1996: 344). 그가 보기에 문화적 정체성이란 타자와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달려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정체성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정체화 과정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Hall, 1996: 345-346). 이러한 맥락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나 타자화 과정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은 매우 중요한데, 이제 홀은 “정체성은 담론 안에, 재현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재현에 의해 부분적으로 구성된다. 정체성은 자아의 서사이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가 누군지 알기 위해 자아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것에 구조를 부과한다”고 주장하면서 “차이와 ‘관계를 맺는(in relation to)’ 정체성”을 사유하자고 요청한다(Hall, 1996: 345-346).

 

그러나 당대의 정치적 상황은 다시금 배타적이고 본질주의적인 민족적 정체성을 동원하고 있었다. 홀은 정체성과 차이의 관계를 사유하면서 에스니시티를 이해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민족의 과거는 세계의 민족들(people)과 자신이 맺는 관계를 발견하는 위치이자 그 자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은 ‘과거’의 단순한 복귀(restore)가 아니다. 다시 말해, 문화적 정체성으로서 에스니시티는 분명 과거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만, 이는 부분적인 서사로서 회복되어야(recover) 하는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선택적인 발견의 과정이다. 홀이 보기에 이는 앞서 제기된 배타적이고 본질주의적인 민족적 정체성과 같은 의미의 에스니시티가 아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정체성 안에 에스니시티는 어떤 본질로서 포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Hall, 1996: 347-348).

 

(2) 민족주의의 재생산: ‘진부한 민족주의’와 민족적 페티시

 

한편 ‘진부한 민족주의(banal nationalism)’은 민족이나 민족주의의 재생산에 주목하지 않았던 기존의 민족주의 논의를 비판한 마이클 빌릭(Billig, 1995)의 개념이다. 그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진부한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민족주의가 지속되기 위해서 그것은 매일 재생산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Özkirimli, 2010: 171). 다시 말해 “지속되는 민족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추상적 공동체로 상상화는 과정들을 밝혀내야 한다.” 여기에는 민족의 일상적인 재현(여기에는 깃발, 스포츠 행사, 국가, 상징, 화폐 등이 포함된다)과 ‘국내(domestic)’와 ‘국외(international)’을 구분하는 다양한 수사가 동원되고, 그 효과로서 민족은 자연화된다(Özkirimli, 2010: 173-174). 이러한 주장은 민족주의의 재생산 기제로서 스펙터클과 ‘민족적 페티시(national fetishes)’의 중요성을 강조한 앤 맥클린톡(McClintock, 1996)의 논의와 공명한다.

 

맥클린톡은 “모든 민족주의는 젠더화 되어 있고, 발명되었음, 위험하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글을 연다(McClintock, 1996: 260). 특히 그는 민족이 가족으로 서사화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나(262), 가족이라는 이성애 관계 하에서 남녀 간에 위계적으로 부여되는 시민권(263)의 양상과 그 재현 방식에 주목한다. 남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맥클린톡은 아프리카너 민족주의와 (흑인) 아프리카 민족주의 모두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민족 개념을 자연화 하는 데에 동원되었던 많은 재현물들이 철저하게 젠더화 되어있다는 점을 강조한다(McClintock, 1996: 276). ‘그렇다면 민족적 주체로서 여성의 자리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고자 맥클린톡은 젠더화된 민족주의 투쟁의 내부에서 존재했던(그러나 오랫동안 비가시화 되어왔던) 여성 주체의 역사를 발견한다. 즉, 그는 민족주의가 필연적으로 남성중심적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주의와 젠더의 관계를 재사유할 것을 요청한다(McClintock, 1996: 279).

 

2) 민족주의와 젠더 : 니라 유발-데이비스를 중심으로

 

맥클린톡과 비슷하게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민족주의가 사실상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왔음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대표적으로 니라 유발-데이비스(2012)는 젠더 관계와 국가/민족이라는 기획 간에 어떠한 상호적인 영향이 존재하는지 살피고자 한다. 이를테면 민족성(nationhood)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관계성의 범주를 인식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15). 그러면서 그는 기존의 민족주의 논의들이 사실상 젠더에 무지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원초론자들은 민족을 친족 관계가 ‘자동적’으로 확장된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하거나(15), 민족(주의)의 재/생산을 다루는 유물론적 연구 또한 국가 관료나 지식인, 국가 장치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16). 심지어 민족주의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주목했던 겔너나 스미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여성들이 그저 국가라는 각축장에 ‘들어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항상 거기에 있었고, 국민의 구성과 재생산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주의 관련 분석 담론에서 이들을 분명하게 포함시킨 것은 매우 최근의, 그것도 부분적인 노력이었을 뿐이다”라고 응답하고 있다(18).

 

유발-데이비스(2012)는 이제 “젠더와 민족 담론이 서로 교차하고 서로에 의해 구성되는 다양한 방식”을 분석하겠다고 나선다(20). 여기에서 민족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일치한다는 관념은 거부되는데, 유발-데이비스는 이러한 분석이 단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해체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권력관계의 결정적 중요성”과 역사적, 사회적 범주화를 포함하고 교차하는 사회적 분할들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9). 이는 한편으로는 젠더 혹은 여성이라는 범주에 대한 질문,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 혹은 민족국가라는 범주에 대한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1) 여성과 젠더

 

우선 여성과 젠더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페미니스트들은 일찍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문명과 자연이라는 이분법 하에서 남성이 전자에, 여성이 후자에 위치하며, 이러한 분리에 기반한 시민권 개념은 젠더 편향적이고 허구적이라는 점을 비판해왔다(유발-데이비스, 2012: 22). 그러나 이러한 경계선은 비서구, 포스트식민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Chatterjee, 1990; 유발-데이비스, 2012: 23에서 재인용).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데, 이러한 주장에서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에 대한 일반화는 상이한 사회의 다양성을 무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문화(혹은 문명)’과 ‘자연’의 관계를 위계화 하는 서구적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4). 결정적으로 이러한 주장에서는 젠더 관계의 역사적 특수성과 구체적인 재생산 방식을 탐구하기보다 여성 종속의 ‘근원적’인 원인에만 몰두할 위험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가부장제’라는 논의인데, 유발-데이비스는 가부장제를 자본주의나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사회체제로부터 “자율적인 별도의 사회체제”라는 개념에 반대한다(Anthias and Yuval-Davis, 1992: 106-109; 유발-데이비스, 2012: 26에서 재인용). 즉, 여성 억압은 오히려 “사회적 권력과 물적 자원의 분배와 관련된 사회 관계 특유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유발-데이비스, 2012: 26).

 

이제 유발-데이비스는 젠더와 여성의 관계를 좀더 유동적이고 복잡하게 사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섹스와 젠더의 구분이 문제가 된다. 페미니즘 정치는 섹스와 젠더를 구분하면서 여성 억압을 설명해왔으나, 델피(1993)나 버틀러(1990) 등은 이러한 논의에서 결국 젠더는 섹스로 돌아가며, “생물학이 아닌 문화가 운명이 된다”고 지적했다(Butler, 1990: 8; 유발-데이비스, 2012: 28에서 재인용).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면서 유발-데이비스는 젠더와 성차를 담론 양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담론을 통해 일단의 사회적 주체들은 상이한 성적/생물학적 구성물을 지닌다고 정의되기 때문”이다(유발-데이비스, 2012: 29). 이러한 정의에 따를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고 유발-데이비스는 지적한다. 먼저 젠더와 성차가 담론이라고 할 때 몸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유발-데이비스는 극단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을 경계하며 “자아는 언제나 상황적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몸과 수행의 관계를 성찰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유발-데이비스, 2012: 30). 두 번째로는 젠더와 다른 사회적 범주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앞서 정의한 것처럼 주체가 언제나 상황적이라고 했을 때 젠더 이외의 계급, 민족, 인종, 국가는 물론 몸, 연령, 능력 같은 다양한 요소가 정체성과 관련되는데, 이러한 모든 차이를 억압해서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를 도출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냐는 거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유발-데이비스는 여성들에게 공통된 것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페미니즘이 모두를 떠안을 수 있는 정치운동으로 구성할 것인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한다(유발-데이비스, 2012: 32).

 

(2) 민족과 국가

 

유발-데이비스는 민족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일치한다는 허구적 가정을 거부하면서 이러한 믿음이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였음을 폭로한다(유발-데이비스, 2012: 32-33). 이러한 통념과 달리 민족주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주의와 같이 권리에 대한 접근을 차등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상호 연결된다는 조건” 속에서 국가와 시민사회, 가족을 별개의 세 영역으로 다루어야 하는데, 이를 통해 국가를 민족이나 시민사회와 분석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젠더와 국가 기획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유발-데이비스, 2012: 34). 이는 공적/사적 영역에서 여성과 가족을 후자에 배치함으로써 민족과 국가 논의에서 여성이 배제되어온 지적 전통에 반대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유발-데이비스는 민족주의의 성장을 근대 부르주아 가족 전통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 조지 모스의 작업에 주목한다(유발-데이비스, 2012: 35). 물론 유발-데이비스는 국가와 사회가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나 ‘국가’가 동질적이고 일관된 존재인가 하는 점에서 논의의 여지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와 사회를 서구중심적으로 읽어내지 않으려면 위와 같은 관점 하에서 비교방법론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유발-데이비스, 2012: 38-39).

 

그렇다면 민족과 국가는 어떻게 얽혀있는가? 유발-데이비스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한 고전적 접근들을 두루 검토하면서 민족 기획과 국가 기획 사이의 내재적 연관성이 있다는 공통점에 주목한다. 즉, 민족주의 담론은 “집단체에 대한 개별적 정치 대의권 요구”의 이데올로기로 요약될 수 있을 텐데, 여기에서 민족은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다양한 경계들을 통해 구성된다(유발-데이비스, 2012: 41, 47).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범주화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있어왔지만, 유발-데이비스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는 불가능한 임무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민족의 경계가 무엇이었느냐이다. 유발-데이비스는 이를 ‘혈통에 근거한 한민족’, ‘한 문화라는 신화’, ‘국가 내 평등한 시민권이라는 신화’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제시하면서 이러한 경계가 어떻게 재/생산될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다고 나선다(유발-데이비스, 2012: 33-34).

 

(3) 민족화된 젠더 그리고 젠더화된 민족

 

여성과 민족, 그리고 민족과 국가의 관계 대해 살펴본 유발-데이비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민족과 민족주의가 어떻게 여성을 활용해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해왔는지 분석한다. 여성들의 재생산권은 대개 여성 개인의 권리라는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유발-데이비스는 이를 “특정한 민족 집단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인구정책의 젠더적 성격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혈통에 근거한 한 민족’에 기대어 있는 민족주의 담론에서 결혼과 출산,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제가 매우 핵심적이기 때문이다(유발-데이비스, 2012: 52). 특히 인구의 힘이나 우생학 담론, 멜서스 담론에 의해 민족의 재생산은 민족 경계의 구성에 이용되어 왔으며, 여기에서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다시금 강화된다. 따라서 재생산권과 관련된 논의를 단지 개인주의적 차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되며,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종 집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여성들의 위치를 지정하는 민족주의 기획과 권력 관계 안에서 재생산을 사유해야 한다고 요청한다(유발-데이비스, 2012: 76).

 

그렇다면 여성은 그저 민족의 일원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재생산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이제 유발-데이비스는 민족주의의 문화적 재생산이 젠더 관계를 경유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상징적 ‘경계 수비대들’에는 섹슈얼리티나 젠더화된 권력 관계, 남성성이나 여성성 같은 젠더화된 문화적 장치가 핵심적이라는 것이다(유발-데이비스, 2012: 125-126). 다시 말해 세계의 의미와 사회질서의 성격에 대해 특정 관점을 제시하는 헤게모니 문화는 여성들을 “종종 집단체의, 집단체 경계의 문화적 상징으로, 집단체의 ‘명예’의 잉태/전달자이자 세대를 잇는 집단체 문화 재생산자”로 규성한다(유발-데이비스, 2012: 125).

 

3) 민족주의와 섹슈얼리티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민족주의의 기획에서 젠더는 부차적인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핵심적인 것이다. 민족을 구성하는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경계는 결코 젠더 중립적인 표지가 아니다. 조지 모스(2006)는 이러한 분석을 섹슈얼리티의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는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와 “점잖고 올바른” 예절과 도덕을 가리키는 동시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가리키는 고결함(respectability) 간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한다(모스, 2006: 9).

 

유럽에서 예절이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비록 종교적 맥락에 놓여있지만, 실제로 고결함이라는 가치가 중요시되기 시작한 것은 중간계급의 이해관계와 맞물려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계급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방탕한 귀족이나 나태한 노동자와 구분되는 자신들의 정당성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걸맞는 고결함을 내세우게 된다(모스, 2006: 15). 이러한 고결함에서 핵심이 되었던 것은 성 행위였다. 전통적인 카톨릭보다 엄격한 도덕적 순결성을 요구했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를 따라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종교적 가치에 따라 엄격하게 만들어 나갔다(모스, 2006: 17). 이처럼 산업화에 따른 계급적 이해에 따라 요청되었던 고결함은 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그 구체적인 장은 섹슈얼리티였다. 성을 통제하려는 이러한 투쟁은 의학과 교육, 사법 등 구체적인 실천적 장치를 통해 전개되었고, 이러한 장치를 동원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 바로 민족주의였다(모스, 2006: 22).

 

민족주의라는 관념 아래에서 부르주아의 도덕이었던 고결함이라는 가치는 이제 전 계급으로 확산되게 된다. 즉, 민족주의는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면서 일정한 방식으로 생산해냈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앞서 유발-데이비스(2012)가 설명했던 젠더와 민족의 관계의 또 다른 측면인 셈이다. 특히 고전적 상징을 민족적 이데올로기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에 대한 상이하고 위계적인 의미가 부여되었고, 이제 남성적 아름다움은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여성은 이러한 민족의 전통 질서의 수호자로 자리매김 한다(모스, 2006: 34-35). 이때 남성과 여성의 이성애적 결합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핵가족은 전근대적인 친족 체계를 대체하면서 남성과 여성에게 적합한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민족주의적 고결함의 가치를 일상적으로 재확인시킨다(모스, 2006: 37).

모스는 핵가족 내부의 역동에도 관심을 가지는데, 이러한 가족 형태는 단지 당대의 민족주의적 가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실제 핵가족을 유지시키는 남성 가장들이 자신의 부권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주의에 호소했다는 것이다(모스, 2006: 39). 이러한 모스의 분석은 ‘가부장제’를 초역사적인 여성 억압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간단하게 정의하는 대신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 하에서 가부장제의 작동방식과 효과를 파악해야 한다는 유발-데이비스의 지적과 맞닿아 있다. 유럽 근대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특정한 방식의 섹슈얼리티를 사회와 가족이라는 양자의 측면에서 구성하면서 자신을 자연화 했던 것이다.

 

4. 포스트식민주의에서 민족과 젠더

 

이처럼 페미니스트들은 고전적인 민족주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맹점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왔다. 다른 한편에서 제3세계 지식인들은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서구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민족주의를 포스트식민주의적 시각에서 재이론화하고자 시도한다. 특히 이는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피터 차일즈와 패트릭 윌리엄스(2004)는 ‘포스트식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서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단지 정치적 체제로서 식민지 상태와 지배(dominance)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긴 시간대에서 물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종속 상태의 지속에 관한 문제이다(24). 또한, 제국과 식민지의 역사가 실질적인 지리적 배치 상에 존속했으나, 민족과 국민 국가(nation-state)의 경계의 불/일치라는 문제나 제국주의가 지구적 자본주의의 외양으로 변모한 것 등을 고려하면 포스트식민의 공간이라는 문제는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차일즈‧윌리엄스, 2004: 37-38). 또한, 포스트식민의 주체 또한 같은 이유에서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는데, 이들은 정체성이라는 문제가 포스트식민 사상을 관통하는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포스트식민은 누구인가?’에 답을 내놓기보다는 인식론적인 쟁점으로 끌고 간다(차일즈‧윌리엄스, 2004: 42-44).

 

그렇다면 포스트식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들은 여기에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이들은 포스트식민주의를 단지 ‘단일화된 무역사적 추상화’로 보는 견해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배적 기획에 따른 부속물’로 보는 견해도 거부하면서, 포스트식민주의가 가지는 함의를 지배와 종속, 실제 권력이 작동되고 재생산되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가지고 간다(차일즈‧윌리엄스, 2004: 56). 이는 때로 제국주의의 현대적 버전으로서 자본주의의 세계화라는 지구적 차원과 중첩되기도 하며, 여기에서 지식인과 재현이라는 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이제 구체적으로 포스트식민주의 사상을 발전시켜온 주요 이론가를 살펴본 뒤 다시금 페미니스트 정치학으로 나아가보자.

 

1) 포스트식민주의 이론들

 

(1) 프란츠 파농의 피식민지 정체성

 

포스트식민주의 사상의 역사는 사실상 프란츠 파농에 대한 각주 달기라는 말도 있듯 파농은 포스트식민주의의 기틀을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라는 두 가지 지적 유산을 바탕으로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관계, 거기에서 형성되는 억압적인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으로 “흑인들에게서 관찰한 ‘자기-분리’, 혹은 근본적인 자기소외는 의심할 여지없이 ‘식민주의적 종속’의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본질주의적인 ‘아프리카인’ 정체성에 대한 관념을 “위대한 흑인이라는 망상”이라고 선을 그으며 이 또한 거부하고자 한다(차일즈‧윌리엄스, 2004: 110-114). 다시 말해 파농은 지배와 종속, 그리고 저항이라는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피식민자의 정체성은 한편으로 물질적이고 실제적인 지배에 터하고 있는 것이지만, 보다 파농이 주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러한 지배 하에서 피식민자의 내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에 있다. 예컨대 파농은 언어의 위계에 따른 타자화에 주목하는데, 파농은 식민지에서 본국의 언어는 ‘백인성’의 척도가 된다고 주장한다(파농, 1998: 24). 이는 단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human-being)로 인정받는 것과 관계된 실질적인 권력의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파농은 흑인들이 한편으로는 오롯이 동화될 수도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오는 자기소외를,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국어나 커뮤니티에서 오는 분열증적인 관계 속에서 모순적인 주체성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파농, 1998: 25-26). 이처럼 완전히 동화될 수도,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는 언어적 종속은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준다(파농, 1998: 49-50). 파농은 이러한 분석을 실제적인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관계 양상으로 밀고나간다.

 

그는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이라는 관계 양상을 분석하면서 피식민자의 분열적 정체성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는 유색인 여성에게서 백인 남성과 결혼함으로서 백인 집단에 포함되고자 하는 선망을, 유색인 남성에게서 백인 여성을 차지함으로써 ‘백인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파농이 보기에 이러한 열망은 오롯이 실현될 수 없고, 오히려 거기에서 오는 간극이 분열적인 피식민자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성애적 결합을 젠더 위계적으로 이해하는 파농의 관점에 대한 문제를 차치하고 보면, 위계적인 권력 관계가 실재하는 가운데 소외된 자가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패배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파농은 고정적인 흑인성이 아니라 ‘흑인됨’의 구성방식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이를 “흑인이 꼭 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은 백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검을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잘 요약했다(파농, 1998: 140). 지배적인 백인의 응시 속에서 흑인들은 백인이 될 수도 없으며, 반대로 흑인이라는 그 어떤 주체성을 가질 수도 없다(파농, 1998: 142-143). 그렇다면 남은 선택이란 과연 무엇인가? 파농은 오로지 외관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혐오, 비합리적인 인종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흑인성으로 되돌아간다. “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나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로 나는 비합리성에 내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 불합리한 백인 때문이었다. 투쟁의 필연성 때문에 퇴행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파농, 1998: 156). 파농은 이처럼 “비존재의 감정”을 구성하는 현실적인 권력의 작동 방식을 폭로하면서 이제 실천의 시간이 왔음을 선언한다(파농, 1998: 174).

 

(2)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프란츠 파농이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위계적인 관계 양상에서 형성되는 피식민자의 억압적이고 자기분열적인 정체성 형성 과정에 주목했다면,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제국주의적인 서구 세계, 특히 지적 세계에서 (아마도 허구적일) ‘동양’을 어떻게 구성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의 실제적 효과는 무엇이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으로 하나의 모습을 갖는 담론으로서 표현/표상”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하면서, ‘타자의 이미지’를 구성함으로써 유럽문화는 “일종의 대리물이자 은폐된 자신이기도 한 동양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스스로의 힘과 정체성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사이드, 2017: 15-19). 특히 학문적 전통에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대체로) ‘서양’이라고 하는 것 사이에 만들어지는 존재론적이자 인식론적인 구별에 근거한 하나의 사고방식”이다(사이드, 2017: 16). 사이드는 푸코의 담론 개념을 활용해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식의 총체를 구성해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이드는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먼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이 ‘동양’이라는 것을 단지 허구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아니다(사이드, 2017: 21). 동양이라고 일컫는 지역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화와 민족, 역사는 그 자체로 실재한다고 인정하면서, 사이드는 자신의 관심사가 오리엔탈리즘의 현실적 설명력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담론의 구조로서 오리엔탈리즘의 효과를 문제 삼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사이드, 2017: 22). 또한, 동양과 서양의 여러 국가와 민족 사이에 존재했던 지배와 종속의 역사를 고려할 때,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이해는 실제적인 “권력의 편성형태”와 함께 사유되어야 한다(사이드, 2017: 22-23). 유럽 제국의 역사 하에서 생산된 동양에 관한 많은 서술 속에서 주체의 위치는 은폐되어 있다. 따라서 실제적 권력 관계를 고려해야만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담론적 효과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이드, 2017: 23). 그렇기에 “오리엔탈리즘은 허위와 신화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고 만일 그 진실이 밝혀진다면 허위와 신화는 일거에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사이드, 2017: 2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현상’을, “인간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문화적 작품, 정치적 경향, 국가 그리고 지배의 특수한 현실 사이의 관련성을 고찰할 수 있는가?”(사이드, 2017: 41). 다시 말해 정치와 문화의 관계는 여기에서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방법론적 차원에서 사이드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알튀세르의 문제 설정(problematic)이라는 개념을 통해 동양에 관한 지식과 텍스트들이 상호참조적으로 스스로를 구성하면서 만들어내는 오리엔탈리즘의 효과를 분석한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 자체가 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효과 또한 ‘단지 문화적인’ 것은 아닌데, 표상과 재현이라는 차원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자신이 터하고 있는 제국주의적인 권력 관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정치 논리로서 순환적으로 동원된다(사이드, 2017: 56-57). 이처럼 사이드는 단순하게 ‘상부구조’로서의 문화나 이데올로기의 힘을 보여주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동양에 관한 일련의 지식의 구조가 담론으로서 어떻게 현실적인 권력 관계와의 순환적인 관계 속에서 ‘동양’을, 그리고 그 반대 쌍이자 은폐된 지식과 권력의 주체로서 ‘서양’을 만들어 내왔는가에 주목하고 있다.(사이드, 2017: 57)

 

(3) 호미 바바의 혼종성

 

앞서 파농과 사이드가 보다 식민지배자와 피식민자,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비록 그러한 이분법을 재생산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분석적으로 활용했던 것과 달리, 호미 바바는 이러한 구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바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기반 위에서 식민주의에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대신, 포스트식민주의를 불확실성, 양면성, 혼성성, 그리고 복수의 문화적 경계들로 구성된 공간으로 이해한다(샤프, 2011: 209).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달리 식민주의적 실천이 전개되는 구체적인 실천의 상이한 경관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고 주장하면서, 바바는 오히려 혼성성이나 양면성, 불순성과 같은 지점을 포착하여 이를 통해 식민주의적 논리에 도전하고자 한다. 바바에게 혼성적인 것은 단순히 경계를 새로 긋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계 자체를 전복하는 저항의 정치를 의미한다(샤프, 2011: 211).

 

흥미롭게도 이러한 지점에서 바바는 파농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읽어낸다. 파농이 식민지적 소외와 적대감을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 열려있는 텍스트이며 불확실성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바바, 2012: 105). 바바는 타자의 응시 하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의 과정과 분열적인 정체성의 공간, 정체성 자체의 승인이 아닌 그러한 표상에 들러붙은 생산물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주체(지배자)와의 동일시로 형성되는 정체성이라는 신화가 해체된다고 주장한다. 파농이 적절하게 서술한 것처럼 그러한 동일시는 오롯이 달성될 수 없는바 양가적이고 자기분열적인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실천의 내용과 의미는 종전과 달라지기 때문이다(바바, 2012: 109-113). 즉, 바바는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것처럼 보이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실천이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발견되는 ‘혼종성의 틈새’에 주목한다. 이제 바바는 서구 언어와 비서구 언어의 발음 차이에서 오는 이질성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모국어와 국가적 공간의 경계에 관한 제국주의적 서구의 불안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 과정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문화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주장하는 본질주의자의 주장을 말소”하는 것이며, “식민지 주체가 ‘자리를 잡는 ’ 곳은 결코 제거할 수 없는 ‘혼종성’의 틈새 속”이자 “서발턴의 위치”라는 것이다(바바, 2012: 143).

 

2) 포스트식민 페미니즘

 

이처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은 기존의 민족주의에 관한 이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민족과 인종, 정체성과 담론에 관한 논의를 전개해갔다. 그러나 파농의 (문제적이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의 분석에서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에서 젠더의 문제는 거의 간과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서 유발-데이비스의 논의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민족주의와 민족 개념에서 젠더 관계는 핵심적이다. 이는 식민주의의 지배하에 놓였던 피식민자의 민족주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페미니즘이 서구 중산층 백인 여성의 이해관계에 복무한다는 의심 속에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과 페미니즘의 통찰은 쉽게 결합되지 못해왔다(McClintock, 1996).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피식민자이자 여성으로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 가야트리 스피박의 논의는 페미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의 이론적 지평을 한껏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1)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스피박은 당대 서구의 가장 급진적인 비판들조차도 일정 부분 “서구 주체 혹은 주체로서의 서구subject of the West or the West as Subject를 보존하려는 이해관계가 얽힌 욕망의 결과”라고 도발적으로 주장한다(스피박, 2013: 399). 그 대표적인 예로 스피박이 소환하는 것은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이다. 이들이 욕망과 권력을 주체성이나 이해관계, 정확히는 ‘사회적 관계들의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사유하지 못함으로써 서구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데에 복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스피박, 2013: 404-405). 여기에는 재현의 정치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스피박은 푸코와 들뢰즈가 이데올로기(의 생산 과정)에서 욕망(desire)을 이해관계(interest)와 거의 등치시키면서 미분화된 욕망의 주체, 다시 말해 현실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주체를 상정하고, 이러한 주체를 권력 담론 속에 끌어들이면서 결과적으로 “행위자의 텅 빈 자리를 이론의 역사적 태양인 유럽의 주체로 채워 버린다”는 것이다(스피박, 2013: 406-407).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피억압자의 구체적 경험’과 이를 재현하는 ‘지식인의 역할 내지는 위치’ 사이의 간극이다. 마르크스는 “(소작농들은) 스스로를 재현[대표]할 수 없다. 그들은 재현[대표]되어야만 한다”는 말로 ‘재현의 정치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스피박, 2013: 412-413). 이와 달리 (서구 지식인들이) “피억압 주체들이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고 안다고 말하”는 것은 본질주의적 유토피아 정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스피박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스피박, 2013: 413). 즉, “지식인은 타자를 자아의 그림자로 끈질기게 구성하는 데 공모”할 수 있다면서 스피박은 이를 ‘인식론적 폭력’이라고 명명한다(스피박, 2013: 422).

 

스피박은 인도 힌두법의 영국적 코드화 과정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프로젝트가 “(서구 지식인들을) 타자의 문명에 입문시킨 최상의 출처”로 귀결되었음을 발견한다(스피박, 2013: 427-428). 이러한 인식론적 폭력 하에서 “문맹 소작농, 부족민, 도시 최하층 하부프롤레타리아 남녀”는 과연 말할 수 있는가?(스피박, 2013: 429). 스피박은 여기에서 ‘이데올로기적 생산’이라는 문제로 돌아간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라는 피에르 마슈레의 말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함의를 짚으면서, 스피박은 “서발턴의 의식에 수반되는 문제에 도달할 때 ‘작품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고 주장한다(스피박, 2013: 436-437). 서발턴(의 재현)과 이데올로기라는 문제는 “문제는 남성을 식민주의적 역사 기술의 대상이자 봉기의 주체로서 지배적인 것으로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젠더 구축이다”라는 문장에 이르러 명확해진다(스피박, 2013: 439). 이제 스피박은 실질적인 착취의 지도 위에 존재하는 서발턴의 존재와 “대면하는 것은 그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묘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서 ‘인식론적 폭력’을 넘어서 타자 구성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으로 서발턴 연구의 목표를 명확히 한다(스피박, 2013: 441-442).

 

스피박은 주체를 탈중심화하는 데리다의 인식론적 기반을 환기하며 “타자의 진정성을 환기하기보다 타자 구성의 역학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분석이나 개입에 훨씬 더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스피박, 2013: 454). 즉, 타자 구성의 메커니즘이라는 관점에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응답하겠다는 것이다. 스피박은 다양한 페미니즘 정치와 페미니스트 이론의 확장을 환영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의식이나 주체를 가정하고 구축하는 것”, 다시 말해 (여성) 정체성의 물화라고 할 만한 인식론적 폭력의 가능성을 경계한다(스피박, 2013: 456). 그러면서 스피박은 서발턴 여성이라는 주체에게 말을 걸기(speak to) 위해 포스트식민 지식인은 “여성의 특권을 ‘배움을 위해’ 체계적으로 ‘잊는다(unlearn)’”고 표현한다(스피박, 2013: 457). 이처럼 배움을 위해 잊는 기획은 앞서 검토했던 “이데올로기적 형성을, 조사 대상 속으로 들어가 필요하다면 침묵이라도 측정해서 명료하게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스피박, 2013: 460).

 

스피박은 “백인종 남자가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 주고 있다.”는 문장을 통해 히스테리에 걸린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려는 욕망과 관련된 문제를 검토한다. 재현의 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 황인종 여성의 과부 희생이라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준 백인종 남자”의 사례로 소환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자들이 죽고 싶어 했다”라는 상실된 기원을 향한 인도 남성의 토착주의로 동원된다(스피박, 2013: 463). 여성이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여성이라는 표상이 갖는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의미에 주목했던 유발-데이비스의 통찰을 상기시키듯, 스피박은 과부 희생을 둘러싼 담론이 “좋은 사회를 확립하는 자로서 제국주의의 이미지는 여성을 같은 종족에게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옹호하는 입장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덧붙인다(스피박, 2013: 466). 이는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 권한을 겉으로만 여성에게 부여하는 가부장적 전략의 위장이라는 것이다. “불쌍한 인도 여자들”이라는 영국 사람들의 담론과 “용감하고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자비롭고 계몽된 남성들’의 담론이 경합하는 가운데 성차화된 서발턴 주체의 생산은 승인된다(스피박, 2013: 470). 나아가 스피박은 “주체의 지위에서 법적으로 프로그램된 비대칭성으로 말미암아 여성은 한 남편의 대상으로 효과적으로 정의된다”고 덧붙인다(스피박, 2013: 475). 이러한 서발턴 주체의 생산 과정이 단지 법이나 억압만이 아니라 ‘자유의지’와 ‘찬양’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스피박은 여성의 주체성이나 여성 신체를 장악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발견한다(스피박, 2013: 476).

 

법과 이데올로기의 작동 속에서 과부-희생은 그저 명시적 폭력의 문제로 축소되면서, ‘사티’라는 좋은 아내됨은 이제 남편을 화장한 장작더미 위에서의 자기-화살로 동일시된다(스피박, 2013: 477-481). “완전한 이데올로기적 형성은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서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 가능성을 폐제하게끔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스피박, 2013: 19) 또, 서발턴 주체를 생산하는 이러한 담론을 재/생산하는 서구의 지식인은 다시금 동양 여성의 상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스피박, 2013: 483-484). 결론적으로 스피박은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주체-구성과 대상-형성 사이에서 여성의 형상은 본래의 무nothing가 폭력적인 왕복 운동 속으로, 전통과 근대화 사이에 사로잡힌 ‘제3세계 여성’의 전위된 형상화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고 주장한다(스피박, 2013: 484). 푸코가 서구 섹슈얼리티의 억압을 설명한 것과 달리, 수티의 사례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이분법을 질문하면서 “침묵이나 비실존과는 다른 무엇으로써, 주체와 대상 지위 사이의 폭력적인 아포리아로써 ‘사라짐’의 자리”를 가리킨다(스피박, 2013: 485). 다시 말해 “성차화된 서발턴 주체가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스피박, 2013: 486) 그렇다면 서발턴 주체의 말걸기 내지는 포스트식민적 개입은 불가능한가? 스피박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부바네스와리 바두리의 자살을 검토한다. 스피박은 바두리의 자살이 “사티-자살이라는 사회적 텍스트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으면서 특별하게 서발턴의 입장에서 다시 쓰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스피박, 2013: 488), 이러한 개입적 실천이 기억되지도, 들리지도, 읽힐 수도 없다면서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글을 마치고 있다(스피박, 2013: 490).

 

(2) 포스트식민주의적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향하여

 

스피박이 제국주의와 제3세계 민족주의 담론 사이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제3세계 서발턴 여성의 주체성에 관해 논의했다면,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2005)는 페미니즘 논의 내부에서 제3세계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에 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서구적 지식이 동양을 어떻게 담론적으로 구성하면서 자신을 은폐해 왔는지 분석한 것처럼 모한티 또한 이른바 서구페미니즘이 3세계를 서술해 온 방식을 비판한다. 여기에는 서구 백인 중산층 여성 지식인뿐만 아니라 제3세계 중산층 여성이 제국의 중심부에서 제3세계 농촌과 노동계급 여성을 타자로 코드화하는 전략 또한 포함된다(모한티, 2005: 35). 모한티는 이러한 양자를 모두 극복하고 주변화된 여성에 대한 대안적인 페미니즘 이론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 모한티는 페미니즘을 단순한 지식 생산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과 분리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활동으로 이해한다. 이때 모한티는 사이드의 비판과 결을 같이하면서 서구 페미니즘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제3세계 여성(women)3세계 여성(Woman)”으로 구성하면서 식민화한다고 비판한다.

 

모한티는 구체적으로 제드(zed) 출판사의 3세계 여성 시리즈를 분석함으로써 여성이라는 범주를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3세계 여성이라는 재현의 정치학이 어떠한 권력 관계와 연루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모한티는 위 시리즈에서 나타난 제3세계 여성의 재현 방식을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 하에서 제3세계 여성은 남성폭력의 피해자, 보편적인 종속자의 위치, 식민화 과정에서 피해자로서 결혼한 여성, 친족 구조 하에서 위치지어진 존재, 종교적으로 억압받는 여성, 경제적 발전 과정 하에서 균질화된 여성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하에서 역사적 특수성이나 잠재적인 전복적 측면은 완전히 배제된다(모한티, 2004: 58).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여성의 종속을 설명하는 다양한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이 이론적, 현실적 맥락과 분리된 채 보편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이처럼 페미니즘의 개념들이 보편적인 방식으로 사용될 때 여성의 계급, 계층, 섹슈얼리티를 비롯한 문화적 다양성은 삭제되기 때문에 인종차별주의, 식민주의, 제국주의와 공모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것이다(모한티, 2004: 62).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차이에 대한 식민화와 문화 상대주의라는 양자를 지양하면서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을 사유할 수 있을까? 모한티는 폭발적인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줄어들지 않고 있는 서구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지적 지배 아래에서 앞으로의 연구는 인종차별, 계급, 민족주의, 성차별 등의 복합적인 차별이 여성에게 미치는 구조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모한티, 2004: 363). 이는 전지구적인 재구조화 과정에서 젠더와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탐구를 요청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하에서 이러한 전지구적인 재구조화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재생산하고 동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결국 이는 젠더와 민족, 계급, 인종 등의 교차성을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모한티, 2004: 366). 모한티는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흐름에 맞서 반세계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초국적 페미니즘의 실천이 장소, 정체성, 계급, 노동, 신념 등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대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모한티, 2004: 370).

 

4. 나가며: 남겨진 질문들

 

지금까지 민족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그리고 이에 관한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이론적, 인식론적 문제제기에 관해 살펴보았다. 서론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전면화 된 글로벌 금융 자본주의와 이를 따라 이동하는 젠더화 된 노동, 그리고 제국의 이해관계와 그에 따른 전쟁의 부수적 피해로 발생하는 난민, 이러한 역학을 무시한 채 자민족 중심주의로 회귀하는 우파 포퓰리즘의 흐름들은 오늘날 민족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에 관한 사유를 다시금 시급하게 요청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예멘의 전쟁 난민의 경우에 있어서도 과연 페미니즘적 비평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다양한 이론적, 인식론적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의 선주민 여성이 여성혐오적인 이슬람에서 온 남성 난민으로부터 받는 존재론적인 위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그저 타문화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온 혐오에 다름 아닌가? 혹은 실재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이에 무관심한 한국 정부를 고려하면 매우 합리적이고 온당한 걱정일까? 그렇다면 난민 가운데 여성과 아이들만을 우선적으로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국가에게 더 많은 책임과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야 할까? 혹시 이러한 요청이 폭력적인 국가 권력을 무비판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은 아닐까?(Bernstein, 2010). 혹은 인종차별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지는 않을까?(Puar, 2007). , 이슬람이 여성혐오적이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어 문제라면 이미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20만여 명의 이슬람인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모한티가 지적한 것처럼 타문화를 인식론적으로 식민화하는 위험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실제로 예멘 난민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예멘 난민 남성에 대한 여성의 우려가 그저 제노포비아라고밖에 할 수 없는 난민 추방담론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가 그저 예멘 난민과 한국 여성이라는 상이한 차원의 약자 간의 우선권을 결정해야하는 문제가 아님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실재하는 공포와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는 어쩌면 권리의 비용과 관련된 문제다. 주해연(Choo, 2013)은 한국에 거주하는 결혼 이주 여성과 이주 여성 호스티스의 사례를 비교분석하면서 피해자 담론과 인신매매 담론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게 이주 여성에 대한 보호를 가능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는 반면, 낙인화된 이주 여성이라는 낙인화된 이미지가 비용으로 남게 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 말해 보편적 인권이라는 추상화된 개념에 녹아있는 도덕적 위계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주해연은 시민권이라는 개념이 통상 개인에게 부여된 권리라고 이해되어 왔으나, 사실상 이성애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가 제공하는 물질적 이득이나 법적 상태, 도덕적 포함/배제와 관련된 것이며, 이는 여성의 자율성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Choo, 2013: 464). 이제 주해연은 그저 획득되는 것이라고 여겨져왔던 권리에는 (젠더화된) 비용이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시민권은 젠더화 된 시민권이라고 명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난민 문제를 다시금 살펴보면 시민권은 젠더화 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민족화 되어있다. ‘난민 남성이라는 범주에서 난민을 거세하고 ‘(난민) 남성이라고 부르는 페미니스트 비평비용은 무엇인가? 실재하는 여성의 공포가 (구태여!) 난민이라는 문제를 경유해서 발화됨으로서 발생하는 비용은 없을까? 엉뚱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예멘 난민 남성이 예멘으로 돌아가 자국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라는 얘기지요?”라는 비꼼이 그저본질을 흐리기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모스, 조지. (2004).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소명출판.

모한티, 찬드라 탈파드. (2005). 문현아 옮김. 『경계 없는 페미니즘』.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바바, 호미. (2012). 나병철 옮김. 『문화의 위치: 탈식민주의 문화이론』. 소명출판.

사이드, 에드워드. (2017). 박홍규 옮김.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스피박, 가야트리. (2013). 태혜숙 옮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in 로절린드 C. 모리스(엮음).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 그린비.

앤더슨, 베네딕트. (2002). 윤형숙 옮김.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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