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사회학

비서구의 LGBTQ 정체성과 사회운동을 이해하기 본문

포스트식민주의, 퀴어 지정학

비서구의 LGBTQ 정체성과 사회운동을 이해하기

플루키 2019. 3. 27. 17:43

모사위(Moussawi, 2015)는 LGBTQ 집합적 정체성의 형성과 사회운동의 전략을 비서구 지역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위해 레바논 사례를 검토한다. 다시 말해 서구 중심의 LGBTQ 집합적 정체성과 사회운동 전략, 진보의 서사를 남반구 사회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기존 분석에 대한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이중적(지역적/지구적) 맥락 속에 놓여있는 남반구 LGBTQ 사회운동 단체의 복잡성과 그 전략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남반구 LGBTQ 단체에 관한 기존 이해를 확장시킬 뿐 아니라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서구 중심의 LGBTQ 정체성, 젠더와 섹슈얼리티, 진보의 서사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까지의 논의에서, 이를테면 Massad는 지배적인 ‘gay international’ 담론의 존재를 주장하며 아랍권 국가가 서구적인 섹슈얼리티 범주를 무비판적으로 지역적 맥락에 수용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Adam 등은 전지구적 LGBTQ의 연대를 추구하는 지배적인 서구 모델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모사위는 이러한 분석이 실제 남반구 LGBTQ의 실체에 가까운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레바논의 두 단체(Helem/Meem)를 중심으로 지역적/지구적 맥락 속에서 남반구 LGBTQ 단체가 퀴어 정체성, 가시성, 권리 담론 등의 맥락에 어떻게 접합되고 탈각되는지 밝히고자 한다.

 

그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 대표적인 텍스트(Massad, Adam et al.)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한편 기존 분석과 실제 현실의 차이를 분석하기 위해 참여관찰 및 인터뷰, 온라인 사이트 담론 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분석을 하는 데에 있어서 Gamson(1995) 등 비판적 퀴어 이론을 통해 기존에 조명되지 않았던 남반구 LGBTQ 운동의 맥락을 의미화 하는 한편 기존 이론에 부여된 ‘보편적’ 이해가 얼마나 문제적인지 드러내고 있다.

 

모사위가 주목하는 단체는 크게 두 곳으로, 하나는 Helem이고 다른 하나는 Meem이다. Helem이 보다 권리담론과 사회적 커밍아웃, 법적 개선 등을 추구하는 등 서구적 운동의 맥락을 추구하는 반면, Meem은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성소수자-여성의 문제를 보다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전략적으로도 Helen은 보다 개방적이고 동화주의적인 전략을 취하는 반면 Meem은 폐쇄적이고 해체주의적인 전략을 선호한다. 이러한 차이는 기존 분석과 달리 남반구 LGBTQ 단체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역적·역사적 맥락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함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두 단체 모두 지역정치학에 깊게 투쟁하고 있는데, 이주는 물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반전, 핑크워싱)를 내고 있다. 나아가 모사위는 국제 성소수자 운동에서 레바논을 바라보는 자유주의적(게이 투어리즘) 시각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데, 두 단체가 국제적 인권 담론 및 성소수자 운동 전략과 연결/탈각되는 과정과 퀴어 가시화에 대한 관점/전략의 차이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퀴어 이론에 관한 서구중심적인 이해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지역적인 것임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푸아(Puar, 2007)로부터 '호모내셔널리즘(동성애국민주의(?)Homonationalism)' 개념이 제기된 이후 성소수자 운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아이러니하게도 푸아르는 후속 논문에서 해당 개념이 특정 운동이나 조직, 인물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데 예컨대 한우리(2016)는 서구 호모내셔널리즘의 침투와 함께 한국 LGBT에게서 “신자유주의 윤리와 협상”하면서 “부분적으로라도 다양한 형태의 다른 나라들의 탈영토화된 시민권 혜택”을 누리려는 시도가 관찰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LGBTQ 액티비즘에 퍼지고 보다 구조적·집단적 차원에서 비판적 변혁의 가능성이 차단되지 않겠냐는 것이다(서동진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국제인권 담론에 포섭되는 등 동화주의적 욕망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보수화될 위험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분석적 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식민주의와 냉전의 유산, 분단 체제의 지속, 그러한 가운데 발흥하는 기독교 보수주의라는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서구 담론을 어떻게 비판/수용 할 것인가 하는 많은 논의들이 탈각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성소수자 운동이 집중하고 있는 주요 의제(군형법, 동성혼/가족구성권, 차별금지법, HIV/AIDS, 성교육)가 어떤 조건에서 형성된 것이며, 이에 관련한 전략과 효과는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내부적 차이/국제적 맥락과의 차이를 복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Moussawi, G. (2015). (Un) critically queer organizing: Towards a more complex analysis of LGBTQ organizing in Lebanon. Sexualities18(5-6), 593-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