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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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어떻게 이성애 남성성을 (재)생산하는가?

플루키 2019. 3. 27. 17:13

패스코(Pascoe, 2011)는 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 남성성과 동성애의 의미가 어떻게 교차하면서 동성애혐오가 제도화되는지 분석했다. 특히 청소년기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학교는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15). 패스코는 1년 반 동안 학교 및 학교와 관련된 공간에서 에쓰노그래피 질적 연구를 실시했다(20). 또한 50여 명의 고등학생과 심층면접을 실시함과 동시에 수많은 고등학생, 교사, 행정관리자들과 비공식 인터뷰를 진행했다(20).

 

특히 공간의 분할이 주요 관심이었는데, 윈터볼, 랠리, 연극, 무용, 점심식사 등은 대개 이성애규범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드라마 수업이나 GSA(Gay-Straight Alliance) 등은 호모(fag)로, 자동차 정비소와 체력단련실은 남성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다(21). 이러한 공간을 관찰하면서 작성한 연구노트는 특정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의미가 어떻게 학생, 교사, 행정관리자들에 의해 협상, 규제, 저항되는지 보여주었다(21-22).

 

물론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수업은 물론 중요한 부분이었지만(28), 패스코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한 수업 내용뿐만 아니라 학교 안에서의 다양한 관계, 대화, 행위 등이 이미 이성애적인 각본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다(31-32). 이처럼 학교 안 일상생활의 많은 의미가 이미 젠더화되어 있는 가운데 게이나 호모(fag)라는 단어는 멸칭으로 쓰인다(54). 남자답다고 여겨지는 일련의 행동을 통해 많은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와의 젠더화된 관계를 구축하는 반면(113), 일부 여자아이들은 남자답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통해 이러한 관계를 전복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117). 이러한 전복에서 남성성이 갖는 의미망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151), 패스코는 대안적인 전략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학교 교육에서 남성성-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요청한다(171).

 

패스코의 연구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섹슈얼리티에 관한 의미가 실제 행위를 통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재생산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섬세한 에쓰노그래피를 통해 그는 비록 남성성이나 동성애 같은 것들이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사소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실천과 상호작용을 통해 그 의미를 자기예언적으로 확증해낼 수 있다는 위험성을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에쓰노그래피가 남성성과 같이 그 의미를 고정적인 것으로 정의할 수 없는 특정한 가치 체계가 어떻게 구체화되고,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데에 있어서 적합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른 한편 패스코의  연구에서는 정치경제적 맥락이 탈각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를테면 폴 윌리스가 『학교와 계급재생산 Learning to Labour』(2004)[1978]에서 주장한 것처럼 학교는 탈정치적인 공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경제적 조건에 놓여있으며, 여기에서 형성되는 '남성성' 문화는 계급 재생산에 사실상 공모하고 있다. 즉, 학교의 '남성성' 문화는 단지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요소로 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급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패스코는 이런 문제보다는 남성성과 성차별주의 자체가 어떻게 자기예언적으로 반복 재생산되는지, 그 내부적 문법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