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사회학

성적 국가? 국가, 섹슈얼리티, 통치성: 인도의 경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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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국가? 국가, 섹슈얼리티, 통치성: 인도의 경우

플루키 2019. 3. 27. 17:25

푸리(Jyoti Puri, 2016)는 인도에서 벌어진 소도미 법에 대한 투쟁에 주목하면서 통치성과 '성적 국가(sexual state)'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즉 국가, 섹슈얼리티, 통치성의 관계를 보겠다는 것이다. 베버의 전통에서 민족국가는 도구적 합리성에 기초한 관료제에 의해 유지되며, 근대사회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핵심적인 단위이다(29). 반면 초국적 자본이 유동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그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는 것처럼 보인다(5). 그러나 푸코의 관점에서 권력은 오히려 담론과 미시적 실천으로서의 통치, 이른바 통치성과 생명정치 국가의 등장이라는 관점에서 사유되어야 한다(10). 또한 『성의 역사』의 핵심 주장처럼 통치성이 작동하는 데에 섹슈얼리티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11),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의 등장은 이러한 권력의 작동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푸리의 관심사는, 이론 내부적으로는 통치성 연구의 맥락을 검토하는 것이다. 특히 많은 통치성 논의에서 섹슈얼리티가 왜 빠져있는가 하는 강한 문제제기인 셈이다(왜냐하면 통치성 개념은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외부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가 축소된다는 기존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로 섹슈얼리티를 축으로 통치가 강화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흐름이 있다. 권력 개념을 푸코의 관점에서 재사유하고 나면 국가의 통치를 미시적인 실천 속에서 파악하게 된다. 예컨대 푸리는 여성에 대한 섹슈얼리티 통제와 소도미 법의 사례를 통해 국가가 성적 규제를 실천하거나, 반대로 이탈하면서 일관되지 않게 섹슈얼리티와 관계되어 있음을 발견한다(5). 여기에서 신자유주의/탈식민주의 맥락에서 국가가 어떻게 통치성을 확보하면서 스스로 구성하는지가 드러나는데, 성범죄가 통계자료로 구축되고 다시금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이 그 예이다(27).


소도미 법을 둘러싼 투쟁을 관찰한 결과 푸리는 '국가'가 베버적 의미의 합리적 총체라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일관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성적'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는 기존 사회과학 논의의 국가의 틀을 뒤집는 것이다. 이제 푸리는 푸코의 권력 개념으로 나아간다. 국가가 섹슈얼리티를 규제하고 조건 짓는다는 것이 통치성의 관점에서 항상 이야기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푸리는 이를 뒤집어, 오히려 섹슈얼리티가 국가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존 푸코디언 논의에서 섹슈얼리티가 이야기되는 방식을 재비판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이미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를 통해 그 효과로서 구성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한편 페미니스트, 탈식민주의, 퀴어 이론 논의에서 국가는 항상 억압자로 나타나는 듯하다. 그런데 푸리의 또다른 관심사는 국가와 섹슈얼리티의 관계가 (인도의 경우) 서구와 같이 이성애/동성애라는 축으로 매끈하게 나누어지는가 하는 데 있다.  오히려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제는 인종이나 종교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서구의 이성애규범성 개념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즉, 이성애규범성은 국가의 특수한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관건이 되며, 섹슈얼리티가 오히려 인종, 종교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통치성을 발휘하고, 그로부터 국가가 형성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론적인 쟁점은 근대 국가의 합리성과 섹슈얼리티 사이에 놓여있다. 예컨대 그람시는 '동의'를 교육함으로써 국가의 지배가 정당화(헤게모니)된다고 설명하지만, 정동적 국가(affective state)라는 관점에서는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정동을 형성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푸리는 여기에서 정동을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확장시키는데, 왜냐하면 앞선 설명에서 정동은 더 이상 (베버의 전통에 있는) 합리성에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순적인 국가의 성적 규제나 젠더화 된 ‘사회적 문제’는 섹슈얼리티를 정동적 국가의 기획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푸리의 관점에 부합한다.

 

푸리의 주된 주장을 요약하자면,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는 과정이나 일관적이지 않고 모순적인 국가의 성적 규제를 통해 국가, 혹은 국가의 통치 방식이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성적이라는 점이 드러난다(11). 즉, 푸리가 제안한 성적 국가(sexual state)라는 개념은 섹슈얼리티를 통치함으로서 ‘국가’가 구성되는 메커니즘을 일컫는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국가가 본질적으로 사회와 구분되는 통합되고 합리적인 총체로서 사회적 삶의 정상적인 형태이며,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환상을 지속”시킨다(5). 다시 말해 생명정치 기술은 인구의 삶과 질을 개선시키는 목적으로 통치를 정당화한다(39). 나아가 섹슈얼리티는 통계와 결합해 도덕적인 쟁점으로 나타나면서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가 하면(35), 해방 이후에도 인권 담론 속에서 서구/비서구의 위계를 재생산하면서 국가의 통치성을 담보한다(37).

 

이와 같은 미시적인 실천을 살펴보기 위해 푸리는 인류학과 사회학의 전통에서 민속지학을 활용한다. 법과 제도, 판례, 정책 등에 머무르는 대신 실제적인 실천과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이를테면 377조의 쟁점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까닭을 이성애규범성의 효과라고 간단히 설명하는 대신 어떤 관행, 장치, 실천이 이를 가능하게 하며 그 효과는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26). 하여 푸리는 377조와 관련된 범죄 기록을 열람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가장치의 작동과 377조 폐지 운동 등 다양한 실천과 관계를 통해 이를 살펴본다.

 

Puri, J. (2016). Sexual states: Governance and the struggle over the antisodomy law in India. Duk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