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 사회학

탈동성애(ex-gay) 운동의 간증서사와 그 정치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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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동성애(ex-gay) 운동의 간증서사와 그 정치학

플루키 2019. 4. 1. 01:42

반동성애에서 탈동성애 운동으로

 

애플이 지난 3월 29일 '게이 치료(탈동성애)' 앱을 모든 국가의 앱스토어에서 삭제했다(기사). 동성애는 치료하거나 교정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항의를 수용한 결과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탈동성애 운동은 강화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주요 반동성애 단체인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등과 민성길, 길원평, 염안섭 등 주요 반동성애 인사들이 결합하여 탈동성애 단체 '아이 미니스트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기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소수자 전환치료의 실태에 대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면 좋다. 닷페이스, "구원자: Save Me 시리즈 링크, 전환치료근절네트워크 페이스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탈동성애(ex-gay)운동은 기존의 반동성애 운동이 혐오와 적극적인 비난을 주된 내러티브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사랑과 치유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행위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박부영, 2018). 이들은 특히 젊은 성소수자를 주된 목표로 설정하면서 유투브를 활용하는 등 기존의 반동성애 운동보다 세련된 형식으로 탈동성애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유투브 영상에 나타나는 탈동성애 간증 서사를 분석한 박부영(2018)은 이러한 변화가 노골적인 혐오의 전략이 점차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탈동성애 운동은 반동성애와 노골적은 동성애혐오를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실제로 각 운동/단체의 구성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성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는 데 따른 적응과 전략적 모색이라는 것이다. 정시우(2015: 8) 또한 미국의 개신교 우파가 활용하는 탈동성애 담론의 배경을 감안하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향상될 수록 혐오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탈동성애 운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탈동성애'는 가능한가?

 

그렇다면 탈동성애는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탈동성애 운동은 동성애가 '교정' 혹은 '치유'될 수 있는 무엇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관점은 한 세기를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에 발흥하여 20세기 초 파시즘과 함께 유럽 등지에 퍼진 성과학은 우생학적 인식론에 기반해 동성애를 병리화 했다. 흥미로운 것은 동성애의 병리화 혹은 의료화는 당대 맥락에서 (일탈적) 성(姓)을 종교적 의미의 죄악(Sin)에서 구출하여 합리성의 영역에 배치하고자 하는 기획의 일부이기도 했다는 점이다(마리누치, 2018; 야고스, 2012; Conrad and Angel, 2004; Weeks, 1996).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섹슈얼리티는 과학의 탐구 대상이 되었고, 단지 동성과 성 행위를 했을 뿐인 과거의 "남색가는 과오를 반복하는 사람이었던 반면, [근대적 의학적 지식 체계 속에서] 이제 동성애자는 하나의 종(種)"이 되었다(푸코, 2010: 50). 이는 두 가지 변화를 불러왔다. 하나는 동성애가 이제 치료와 교정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낙인의 대상으로서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집단이 출현했다는 것이다(이때 우생학과 이어지는 맥락에서 중요했던 것은 근대적 국민국가의 (남성)신체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동성애의 병리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젠더 위계가 강화되어야 했다는 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스, 2004를 참고).

  성과학에서 출발한 동성애에 대한 의학 지식은 오랫동안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했다. 미국심리학회의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과 WHO(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에 동성애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포함된 사건은 동성애의 의료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hy)'는 보다 전통적인 방식의 탈동성애인 셈이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많은 의사, 심리상담가, 그리교 목사들은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동성애자를 '교정'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전기 충격과 약물 투여 등이 있으나 고문에 가까운 이러한 치료가 실제로 동성애를 '치유'했다고 볼만한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1973년에는 DSM에서 동성애가 빠지는 등 동성애에 대한 기존의 과학적 '지식'이 잘못된 것임이 차차 드러났다(예컨대 세계정신의학협회는 2016년에 전환치료가 전적으로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전문).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 뒤에도 탈동성애 운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탈동성애 운동의 다른 흐름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의 전도와 간증을 통한 방식이다. 1976년 설립된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은 가장 대표적인 탈동성애 복음주의 단체로 지난 2013년에 회장 앨런 챔버스가 자신들의 활동을 사과하며 단체를 해산한 바 있다(기사). 이들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는 관점도 일부 공유하고 있었으나, 보다 주된 관심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신에 대한 귀의를 통한 탈동성애에 있다. 이때 도덕적 잣대가 되는 신의 질서는 언제나 국가와 민족, 그리고 '정상 가족'을 경유한다. 엑소더스 인터내셔널 등 미국에서 탈동성애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가 공교롭게도 종교 근본주의와 도덕주의를 전략으로 채택한 우파가 재집권하는 시기와 겹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탈동성애 운동은 "페미니즘, 동성애자, 전통을 벗어난 가족, 10대의 성 생활을 광범위하게 공격"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은 우파 이데올로기의 첨병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루빈, 2015: 292).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반동성애/탈동성애 운동이 정치적 세력으로 등장하는 시기가 보수 정권의 집권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김나미, 2017; 조민아, 2017; 한채윤, 2016).

 

'탈동성애' 운동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그런데 탈동성애 운동이 갖는 정치적 효과와는 별개로, 자신이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동성애에서 탈출했다고 간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자신이 탈동성애에 성공했다고 간증하는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증거로 제출하며 당사자성을 통해 탈동성애를 정당화한다. 심지어 자신의 경험을 증거 삼아 당사자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견 성소수자 운동이 해왔던 커밍아웃의 정치학을 모방하는 듯하다. 그러나 박부영(2018)은 이들의 서사 속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긴장에 주목하면서, 탈동성애 간증 서사가 겨냥하고 있는 효과와 그것이 실패하는 지점을 폭로한다.

  탈동성애 간증 서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의 경험이 대단히 젠더화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레즈비언의 경우 동성애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어린 시절 가정 폭력 경험과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일화를 언급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행의 서사는 탈동성애를 통해 (그 문제적인) 아버지와 화해하면서 봉합된다. 즉, 이들의 탈동성애 서사는 "성에 따라 차별적인 역할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문제적인 가부장적 환경을 외려 안정화 하는 방식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을 편의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과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 유대에 있다. 남성 유대와 동성애 사이의 미묘한 경계 속에서 이들은 어린 시절 다른 남성과의 성적 경험이나 끌림을 스스로 검열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말해지지 않는 어떤 관계의 미묘한 양상들이 어떻게 (이는 사실 사회적 규범의 반영인)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점차 동성애혐오로 귀결되는지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동성애가 갖는 죄악 또한 성별에 따라 다르게 서사화된다. 이들의 탈동성애 간증 서사에서 남성 동성애는 과도한 성욕이나 육체를 향한 갈구로 그려진다. 즉, "남성의 동성애를 신체적 성관계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는 남성을 "성욕을 참을 수 없는 동물적 존재"와 연결시키는 일반적인 인식과도 연결되는데, 그렇다고 할 때 이들에게 '동성애'는 사실상 남성으로서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참아내도록 노력해야 하는 무엇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들의 서사에서 이성애의 자연성 자체가 균열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반면 여성의 경우 동성애의 내용이 육체적 욕망보다는 정신적 고통으로 그려진다. 이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박부영(2018)은 이러한 서사가 한편으로는 "동성애자들을 성적/젠더적 일탈자로 다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체현 그 자체로 그리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들이 '탈(ex-)'했다고 말하는 동성애 이후의 삶의 내용 또한 논쟁적이다. 이들에게 '탈동성애'는 완전한 '탈'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의식적 과정에 가까운데, 박부영(2018)은 이들이 갖고 있는 욕망이 사실상 양성애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탈동성애 간증 서사에서 양성애는 삭제되고 추방된다. 이처럼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이분법을 통해서만 성적 욕망을 정의하면서 이들은 끊임없이 균열되고 도전받는 '이성애'의 지위를 안정화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이 탈동성애 했다는 증거로 '본래의' 젠더 표현으로 돌아간 자신의 외면을 제시하는데, 이처럼 다른 젠더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이들의 주장과 달리) 젠더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는 아이러니가 다시금 발생한다.

 

'탈동성애' 운동이 말해주는 것들

 

탈동성애 간증 서사는 이처럼 수많은 내적 모순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신으로의 귀의라는 서사 속에 안전하게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때 신의 질서는 결국 정상적인 핵가족과 가부장 모델(그리고 이것이 확장된 이성애-국가-민족 이데올로기)이나 다름 없다(박부영, 2018; 이나영·백조연, 2017).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는 사회의 도덕적 공황이 성소수자들의 성적 문란함 때문에 발생한다는 '도덕적 공황' 담론에 기대고 있다(시우, 2018: 50-51). 그렇다면 탈동성애 운동에서 주목해야 할 또다른 지점은 서사의 내적 모순과 그 효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정치적 의미이다. 

  이미 '정상가족' 모델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수 기독교 세력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여전히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탈동성애가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게 폭력적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탈동성애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치인들이 나서서 반동성애/탈동성애 기독교 근본주의의 주장을 승인하고 전파하기도 한다(기사). 동성애에 관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세력 또한 기독교와 보수 정치의 결탁으로 만들어진 것임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기사). 이러한 혐오의 정치에 맞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또한 박부영(2018)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은 기존 반동성애 운동의 노골적인 혐오에 반대하면서 동성애 '전문가'의 위치를 선점하고, '치유'를 상업화(이들은 탈동성애를 통해 후원과 모금, 특강, 상담 등의 사업을 진행한다) 할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에 적응하면서 전략적 전환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들은 "동성애로부터 취약한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탈동성애'가 오히려 동성애자의 '인권'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거나, 탈동성애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의 경험을 증거로 내세우면서 탈동성애를 (커밍아웃의 정치학이 가지고 갔던)'소수자성'과 '정의(justice)'의 문제로 위치시키고자 시도한다(박부영, 2018). 이를 통해 탈동성애 '운동'은 스스로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셈이다. 나아가 반동성애에서 탈동성애로의 전략 변화는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는 성소수자 운동의 슬로건에서 '사랑'을 자신들이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성소수자 운동에게 어떠한 새로운 도전인지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될 필요도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박부영 선생님의 젠더&섹슈얼리티 연구소 신진연구 발표회(2019.3.30)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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